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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 롤모델 이야기/지도자형 위인 롤모델

빌 게이츠 - 세상을 바꾼 컴퓨터 황제 - 빌 게이츠의 생애

by 백패커 소크라테스 202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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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Gates (1955∼)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2007년 미국 ABC뉴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벤처 신화, 세계 제일의 갑부, 검소한 사람의 대명사로 불리며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레이크사이드, 빌 게이츠의 인생을 바꾸다

 

빌 게이츠는 19551028일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태어난다. 아버지 윌리엄 헨리 게이츠는 변호사로서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어머니 메리 맥스웰 게이츠는 교사였지만, 누나 크리스티와 빌 게이츠를 낳은 뒤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교직을 떠난다.

 

미국 시애틀. 왼쪽의 탑이 '스페이스 니들'이라는 탑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는 시애틀 동쪽 16마일 거리의 레드먼드에 위치한다.

 

빌 게이츠의 가족은 대가족으로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는 가족들에 대해 회상할 때 항상 배울 것이 아주 많았다고 말한다. 가족들은 모이면 항상 활기차게 토론했고, 특히 외할머니는 그에게 책을 많이 읽도록 격려했다.

 

빌 게이츠는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린 시절, 빌 게이츠의 가족은 한 팀이 되어서 다른 가족들과 시합을 벌이는 2주 동안의 여름 캠프를 무척 즐겼다. 이 여름 캠프에서는 달걀 던지기나 이어달리기와 같은 팀워크와 재치를 발휘해야 하는 게임을 진행했는데, 그의 가족이 항상 승리하곤 했다.

 

한편 어머니는 생활과 게임 속에서 치밀하게 계획하는 습관을 보여 주어 빌 게이츠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했다. 훗날 그는 이러한 어머니의 계획성 있는 시간 관리가 자신의 미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부모님은 빌 게이츠의 학교와 집에서의 생활을 관찰하면서 그가 아주 명석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내린 결단이 빌 게이츠를 극소수의 우수한 학생들을 키우는 사립학교로 보내기로 한다.

 

레이크사이드라는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이 연계되어 있었는데, 부유층과 권력층의 아이들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수업료가 비쌌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모두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중에서도 영재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영재들을 모아 놓고 레이크사이드가 가르친 방식은 학생들이 하고 싶어 하고 흥미로워하는 것을 학교가 해 줄 수 있는 범위 이상까지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특히 레이크사이드가 빌 게이츠의 인생을 뒤바꾸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 점은 바로 미국에서 최초로 전산실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모두 개인용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레이크사이드를 다니기 시작한 1967년 컴퓨터의 크기는 차 두 대를 주차시킬 수 있는 창고만 한 크기였고, 값도 어마어마해서 컴퓨터를 소유할 수 있는 곳은 정부, 대기업, 그리고 몇몇 대학교에 불과했다. 당시 개인이 컴퓨터를 갖는다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개인이 핵 잠수함을 갖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레이크사이드가 전산실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 이큅먼트 코퍼레이션 사(DEC)가 냉장고만한 소형 컴퓨터를 생산해서 이 컴퓨터와 텔레타이프를 연결한 덕분이었다. 레이크사이드가 전산실에 갖춘 것은 바로 텔레타이프 기계였다. 텔레타이프는 소형 컴퓨터가 모뎀과 연결된 것으로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사용 시간만큼만 비용을 내면 되었다.

 

레이크사이드에서 수학을 잘하고 공상 과학 소설을 즐겨 읽던 학생들이 전산실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기계인지 전혀 몰랐지만, 프로그램을 짜 넣으면 반응을 한다는 사실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학생들에게는 컴퓨터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스스로 알아내고, 만들어 가면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 빌 게이츠와 몇몇 학생들은 전산실에 살다시피 하면서 중앙 컴퓨터에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설치되기만 하면 뒤지고 다녔 고, 그러다가 자주 컴퓨터 시스템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컴퓨터는 여러 사람이 유료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를 빌려 주는 회사로서는 컴퓨터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빌 게이츠도 골치였지만, 이처럼 잘 망가지는 컴퓨터도 골치였다. 그래서 이 회사는 빌 게이츠를 비롯한 컴퓨터 마니아들에게 저녁과 주말에 컴퓨터를 마음껏 사용하면서 시스템을 파괴하는 버그를 찾아내어 기록해 달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이것은 행복한 제안이었다. 이들은 이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램과 운영 체제를 공부해 나간다. 레이크사이드에서 컴퓨터 마니아들은 이렇게 커갔다.

 

 

최연소 억만장자가 되기까지

 

빌 게이츠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쌓은 컴퓨터 실력으로 최고 학년이 될 즈음에는 당당히 봉급을 받으면서 소프트웨어 회사에 채용된다. 한편 레이크사이드에서 빌 게이츠와 함께 컴퓨터를 고치는 일을 하던 폴 앨런은 그에게 함께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한다.. 머지않아 가정마다 컴퓨터를 갖춘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은 그는 그 일을 빨리 준비하자고 재촉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가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강력히 원했다. 그래서 그는 1973년 하버드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다.

 

초기 8비트 컴퓨터 '아타리'

 

하지만 빌 게이츠는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흥미 없는 과목은 거의 듣지도 않았고, 심지어 시험을 보다가 잠이 들 정도였다. 그는 전공인 법학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 평소 좋아하던 수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그런데 그는 어려운 문제만 풀려고 했으며, 쉬운 문제는 풀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자신보다 수학을 더 잘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기의 진로가 수학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빌 게이츠는 한동안 포커 게임에 열중하기도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하는 성격 탓에 포커 게임 또한 그렇게 열중해서 했다.

 

빌 게이츠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폴 앨런은 계속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MITS 사에서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알테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컴퓨터는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이 컴퓨터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러나 아직 그 컴퓨터에는 소프트웨어가 내장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MITS 사로서는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일이 시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폴 앨런은 서둘러 빌 게이츠에게 컴퓨터를 작동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MITS 사에 연락해서 소프트웨어를 짜면 그에 대한 기술료를 받기로 약속을 얻어낸다.

 

두 사람은 8주 동안 밤낮없이 컴퓨터도 갖추지 않은 채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베이직(BASIC)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들고 MITS 사로 가서 알테어를 처음 작동시키던 날, 프로그램을 만든 당사자들도 놀라고 컴퓨터를 만든 사람들도 모두 놀란다. 마치 갓 태어나 생각도 말도 못 하던 아기가 갑자기 ‘2+2=?’라는 물음에‘4’라고 대답한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더욱이 컴퓨터에 영혼을 불어넣은 이들의 나이가 고작 스무 살 안팎이었다는 것도 또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이 일을 해낸 1975년 여름,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를 차려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1981IBM 사가 여러 부품 회사들과 합작하여 16비트짜리 PC를 내놓았을 때,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이 PCMS-DOS 프로그램을 설치한다. 이렇게 생산된 IBMPC ‘5150’은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다.

 

그동안 컴퓨터 시장에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던 애플 컴퓨터를 누르고, IBMPC가 널리 퍼지면서, MS-DOS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 사도 고속 성장을 한다. 그리하여 1986년 주식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빌 게이츠는 서른한 살의 나이로 최연소 억만장자가 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사

 

인터넷 시대를 열다

 

컴퓨터의 기술과 통신 기술이 만나 열린 인터넷 시대. 정보가 빛에 실려 광속으로 정보 그물망을 따라 퍼지는 세상, 옛날 어떤 광고에서 돼지털 세상이라고 한 바로 그 디지털 세상을 앞당긴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사이다.

 

빌 게이츠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편하게 쓸 수 있는 컴퓨터 운영 체계를 만들려고 했는데 ‘윈도우(Windows)’‘윈도(Windows)’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윈도가 처음부터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1985년에 만든 윈도우 1.0은 속도가 너무 느려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 발표한 윈도우 3.0은 출시되자마자 100만 판이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DOS 체제에서 윈도우 체제로 넘어가는 튼튼한 다리 역할을 한 것이다.

 

복잡한 명령어 없이 아이콘만으로 조작할 수 있는 윈도는 인터넷 시대가 열린 이후 ‘윈도우 95’가 출시되면서, DOS를 완전히 대체한 컴퓨터 운영 체계가 되었다. 사람들은 컴퓨터 화면에 세계를 향한 무수한 창을 띄워 놓고 간편하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OS로 널리 사용되는 윈도

 

사람들 사이에는 빌 게이츠가 세계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그중 하나는 빌 게이츠가 딸에게 다음과 같은 자장가를 불러 준다는 상상이다.

 

“조용, 조용, 우리 아가,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아빠가 너에게 앵무새를 사 줄게. 앵무새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아빠가 너에게 다른 걸 사 줄게. 응, 뭐가 좋을까…… 유럽?”

 

빌 게이츠는 그가 번 돈 중에서 막대한 금액을 자선 사업에 기부하기도 하고, 학교에 큰돈을 내놓기도 했었지만, 이런 유머는 그는 컴퓨터 시장을 독점한다는 비난과 그에 따른 법정 소송 등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곱지 않는 시선을 받았던 때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컴퓨터 시장의 성장과 함께 자라면서 컴퓨터에 정신을 불어넣어 온 그의 지금까지의 일생은 세상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성공한 사업가라고만 기억할 수 없도록 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일,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 그렇게 해서 우리의 지식이 세계를 향해 난 창을 통해 빛의 속도로 교환되는 일이 빌 게이츠의 손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빌 게이츠가 이룩한 성공에 대해 운이 좋았다거나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매력을 느낀 일에 잠을 잊고 매달리는 집중력, 그리고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주변 환경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다음의 글은 2013년 무렵 한 회사의 사보에 실었던 것입니다. 꼭지의 컨셉이 특정 CEO가 쓰는 것인 듯 필자인 제가 그 사람인 양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기고 글에는 그 회사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여기선 일반인을 향해 쓰는 것으로 수정하였습니다. 빌 게이츠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 필자가 빌 게이츠에 대한 조사에 기반하여 상상력을 보태 쓴 글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말한다.


1.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시자이고, 2013년 현재, 세계 최고의 갑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시자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세계 최고의 갑부 자리는 엎치락뒤치락합니다. 갑부가 된 과정은 이렇습니다. 정부 기관이나 일부 대학에나 컴퓨터가 있던 시절 제가 다닌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에는 컴퓨터가 있었던 덕에 컴퓨터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던 것입니다. 이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버드 대학 법학과에 입학은 했지만 학문에 대한 이렇다 할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중 알테어라는 컴퓨터가 세상에 나옵니다. 이 컴퓨터는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었던 개인용 컴퓨터였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를 움직일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 일을 해냈습니다. 이 성공을 계기로 학교는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를 건립해, 1981년에 IBM 사가 내놓은 16비트짜리 컴퓨터에 ‘MS-DOS’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합니다. MS-DOS의 성공으로 서른한 살이던 1986년에 저는 최연소 억만장자가 됩니다. 이후 MS-DOS의 불편한 점을 개선해서 1985년부터 윈도를 고안하다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윈도 95’를 탄생시켰습니다. ‘윈도(Windows)’는 아이콘의 으로 필요한 일을 한다는 뜻도 담았지만, 사용자에게 편리한 프로그램으로 도스를 이기다[Win do(w)s]’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후 10년 넘게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2013년 현재는 세계 최고의 부자이고요.



2. 미국은 유럽 선진국에 비해 국가 차원에서의 복지가 탄탄한 편은 아닙니다. 복지 정책은 미흡한 반면 가진 자가 세상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부를 환원한다는 의식은 비교적 강합니다. 기업의 부는 결국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니까요. 저는 미국인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부모님의 기부 교육 덕분에 이런 의식을 잘 키워왔습니다. 이러한 계기 외에 또 하나의 동기는 컴퓨터 프로그램 자체가 어느 한 개인의 발명품이 아닌 데 있습니다. 

월드와이드웹(www)의 설계자인 팀 버너스리는 월드와이드웹에 특허를 걸지 않고 전세계인에게 무료로 사용하도록 배포했습니다. 리누스 토르팔즈의 리눅스도 컴퓨터 사이언스 영역의 공유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제가 부자가 된 것이 심지어 부당하다고 생각기도 합니다. 저는 비록 공유의 정신으로 가득찬 컴퓨터의 세계에서 사적인 소유를 고수함으로써 부자가 된 과거 이력은 있지만, 제가 이룬 부가 이 사회로부터 왔다는 점, 그리고 제가 이룬 부의 원천인 컴퓨터 기술이 온전히 사람들의 지성으로부터 왔다는 점 때문에 제가 이룬 부의 환원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3. 저와 제 아내의 이름을 딴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 20여 년 전 설립한 이래, 현재 제 인생의 주제는 MS사가 아니라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되었습니다. 이 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워렌 버핏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버핏은 카네기 재단이나 록펠러 재단을 능가하는 금액을 저희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습니다. 제가 기부한 금액의 거의 20배에 달하는 금액을 쾌척했지요. 

저희는 세계의 가난과 질병에 맞서고 싶습니다. 가난한 나라들에서 아이들이 소아마비와 결핵 등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재단과 과학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질병을 몰아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계인의 50%는 하루에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연명하고 있는 이 가난한 현실과 맞서고 싶습니다. 노력의 대가를 훨씬 넘어서는 이 부가 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4. 상생은 더불어 삶이지요. 한 사람이 하루에 백만원씩 쓴다고 해도 일년에 4, 백 년 동안 400억원을 쓸 텐데요, 2013년 현재 제 재산은 80조원이 넘습니다. 저와 제 가족이 쓸 돈을 훨씬 넘어선 돈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거액의 기부를 했는데도 돈은 줄지 않고 또 늘어납니다. 제가 물이 마르지 않는 저수지를 가지고 있고, 제 주변에 물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저는 이 저수지를 개방하는 것이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될 뿐입니다. 

저는 사람과 동물의 결정적인 차이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의 ()’이라는 정신이 바로 그런 뜻이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리는 마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으로 그 사람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마음, 서로가 그 마음을 서로에게 품어서 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곧 상생이라고 생각합니다.



5. 저는 어릴 적에는 돈 버는 일을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능한 게이머일수록 게임 머니를 많이 모으고, 레벨업을 단기간에 하지요. 저는 젊은 시절 억만장자가 되었을 때 그 돈이 저의 유능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반독점 위반 혐의의 소송이 잇달아 제기되고, 법정에 서면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워드 퍼펙트 같은 다른 프로그램의 시장 진입을 막은 것이지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기술의 세계는 서로 얽혀 있고, 지식의 세계는 서로 지식을 나눔으로써 풍부해지는 것인데 당시 제가 이런 점을 충분히 깨닫고 배려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소송을 통해 깨달은 것, 그리고 평소 기부의 중요성을 항상 솔선수범하셨던 어머니 매리의 죽음은 저를 급성장시켰습니다. 저희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작은 노력으로 인해 지금보다 조금 더 살 만한 사회가 된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6. 우선 기업 차원에서 하는 다양한 메세나 활동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이룰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기업 메세나란 기업이 예술, 문화, 과학 등의 영역이나 공익 사업에 후원을 하는 것을 말하지요. 특히 미국이나 한국처럼 유럽 여러 나라들에 비해 복지망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 기업 메세나 활동은 더 없이 중요한 상생 활동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기업인과 사원들, 사회 구성원들 각각이 기존의 경쟁 문화를 떨쳐내는 것도 정말 중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경쟁하느라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한 바람에 정작 더 큰 세계적인 경쟁에서는 밀려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사회 구성원들이 음으로 양으로 지금 하고 있는 급식 봉사 활동, 농촌 일손 돕기 봉사활동, 다양한 메세나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하면서 서로가 상생하는 활동을 더 많이 더 활발하게 기획하여 기쁨을 나누시길 기원합니다. 상생을 위해 나눌 것은 돈 말고도 정말 많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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